2024-11-07 23:10
회사의 일이란게 그렇듯 바쁠 때도 있고 한가할 때도 있다. 바쁜 회사의 업무 탓에 휴식이 간절한 개발자들에겐 죄송한 일이지만 요즘 내 회사에선 한가한 나날이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고 회사가 바쁘지 않다기 보다는 내가 담당하고 있는 프론트엔드 쪽 일이 적은 것에 가깝다. 우리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프론트엔드의 중요도가 낮은 탓도 있지만 요즘 들어 더욱 그렇다.
우리 회사는 업무 평가를 월별로 진행한다. 매달 말일이 되면 본인이 한 일과 그 일에 대한 셀프 피드백을 담은 문서를 리더에게 보내고 평가를 받는다. 받은 평가들은 모여서 다음 연봉협상에 반영되니 꽤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나에 대한 평가를 주기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좋다.) 아무튼 이렇게 가끔 회사에서 프론트엔드의 업무가 많이 없을 때 썩 곤란하다. 바쁠 땐 바쁘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올해 7월쯤 업무 평가에 대해 "이젠 본인이 일을 찾아서 할 수 있어야 한다." 란 피드백을 받았다. 수동적으로 시키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기에 문제점을 찾고 그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업무를 생산하고 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처음 이러한 피드백을 들었을 땐 많이 혼란스러웠다. 이내 어떤 업무를 해야 회사의 목표에 이바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갔다. 그 고민에서 깨달은 사실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것도 축복받은 환경이다. 본인의 위치에서 자유롭게 일을 탐색하고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누군가가 절실히 바라는 환경일 수도 있다.
사실 마음 속 한켠으로는 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 시키는 일에 대해 해결방법을 고민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냈을 때의 성취감은 여전히 기쁘기 그지없다. 나는 아직 문제를 발굴하는 것에 대해 미숙하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R&D이외의 부서와 더 많은 대화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우리 회사의 다른 부서 사람들이 어떤 업무를 하는지는 알아도, 그 업무를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도구를 사용하며, 어떤 프로세스를 거쳐 결과물을 도출하는지 하나도 알지 못했다. 나는 이때까지 조금 멀게 생각했던 동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업무를 지원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리 PM님이 나에게 바란 것이 이러한 방향이 맞는 것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프론트엔드가 담당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구조 개선을 바랬을까? (성능 개선은 아닌 것 같다.) 혹은 우리의 서비스를 조금 더 좋게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를 바랬을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이 더 좋은 개발자가 될 수 있는 양분이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