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6 11:15
최근에 출판사에 취직한 선배를 만났다. 이번 한강작가님의 노벨상 수상으로 출판업계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심지어 선배는 기독교와 관련된 서적을 담당하는 문화원에 몸을 담고 있는 데에도 그게 느껴진다고 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디지털로 유통되는 세상이다. 요즘은 "책" 이라는 컨텐츠가 읽는 것을 넘어 "오디오북" 으로 듣는 것으로도 "서비스"되고 있으니 더 할 것이다. 전자책이 종이로 된 책을 100% 대체할 수 없기에 종이로 된 책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 규모가 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고리타분한 이야기겠지만 나는 종이책을 좋아한다. 손 끝으로 느껴지는 꺼끌꺼끌한 촉감도 종이를 한장씩 넘어가며 읽는 호흡도 좋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책장안에 책들은 소설이 아니라 기술 서적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제 나에게 독서는 취미 생활이 아니라 기술을 학습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워졌다. 책은 여전히 나에게 특별한 존재이지만, 그 특별함의 의미가 변해버렸다. 예전엔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 다른 세상을 여행했다면, 이제는 한 줄의 코드나 기술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책장을 넘긴다. 책 속의 세계는 여전히 흥미롭지만, 그 세계는 더 이상 상상이 아니라 현실에서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변했다.
물론 책이 가져다 주는 의미가 퇴색된 것은 아니다. 단지 나의 관심사가 변했다. 교보문고에 들어섰을 때 나는 문학 책장보다 IT/컴퓨터 책장 앞에 더 오랜 시간을 서있는다. 어제는 요즘에 트랜드를 알아보기 위해 인기 도서를 검색했는데, 10페이지가 넘어가 100권이 넘는 책을 살펴봐도 Front-end 기술 서적을 찾기 어려웠다. Javascript Deep Dive가 유일했는데, 프론트엔드 기술 서적이라고 바라보기 어렵다. 1페이지와 2페이지가 정보처리기사등의 수험서로 가득찬 것은 오래된 일이고, Excel이나 Notion 같이 도구의 학습과 관련된 책들은 6페이지를 넘어가야 보이지 않는다. 인공지능 관련된 책들은 몇권 보이던데...
프론트엔드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분야에서 종이책을 출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나 역시 과거에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출판 제의를 받은 적이 있었지만, 응하지 않았다. 그 책을 구매할 독자들에게 못할 일인 것 같고, 스스로 떳떳하기엔 역량이 부족하다 생각한다. 무엇보다 내가 배우고 있는 기술이 몇 년 뒤에도 현업에서 사용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고민이 담긴 기술 서적을 읽고 싶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 책만이 줄 수 있는 체계적인 구조와 정제된 정보의 가치는 여전히 크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내가 읽고 싶은 책, 그리고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책이 계속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디지털 시대에도 책이 주는 깊이와 여운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